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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먹거리

옛날을 돌아켜 보면서…
내가 나온 졸업한 국민학교는 청담국민학교.
내가 다닌 국민학교는 광명국민학교.
나는 광명국교를 6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청담국교로 전학을 갔다.
나의 국민학교 시절의 추억은 모두 광명국교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때 우리를 열광시켰던 먹거리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

1. 아폴로
약 직경 2~3미리 의 긴 비늘관에 사카린 성분의 고체가 들어있는 제품.
이 작은 비닐관들이 약 300여개 정도가 아폴로라고 써진 봉다리안에
들어있었다. 학교앞의 여럿있던 문방구마다
경쟁적으로 팔았고 몇개씩 나눠줄수도 있다는 특장점으로 인해
나는 주로 한봉다리를 사는 쪽을 택했다.
기억나는 가격은 200원. 당시 하루 용돈이 500원이었던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풍족함을 느끼었기에 200원을 투자한 아폴로를
십여개씩 친구들에게 나눠줌으로써 나의 위치를 공고히 할수 있었다.
이걸 그냥 씹어서 먹으면 침으로 범벅이 된 비닐관속에
남아있는 아폴로가 너무나 아까워 어케든 않남기고 먹는 방법을 알아내야 했는데 한 친구가 그 비법을 전수해주었었다.
방법은 십여개의 아폴로를 손바닥위에 놓고 양손을 힘차게 비비고 나서
빨대로 빨듯이 쭉욱 빨아들이면 남김없이 먹을수 있었는데
가끔 끝에부분의 아폴로가 손바닥에 흘러서 손바닥을 핥아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남아도는 아폴로였고 씹을때 비닐관이 터지면서
느껴지는 기분을 느끼기위해 씹어먹고 뱉어내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2. 쫄쫄이.
이 쫄쫄이라 불리는 제품을 두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전부 노란색으로 된 얇은 판이고 다른 하나는 빨강과 노랑이 스프라이트
형태로 되어있는 얇은 판이었다.
그 빨강과 노랑 쫄쫄이에는 하트랑 새같은 몇가지 문양이 새겨져 있어서
그걸 띁어서 먼저 먹고 나머지를 쳐리하기도 했다.
이건 마치 씹을때 고무같지만 씹으면 단맛이 나는 신기한 제품이었다.
이건 그냥 먹을수도 있고 구어먹을 수도 있었는데
문방구 앞에 마련된 연탄난로에다가 살짝구우면 바삭바삭한 과자처럼 변했다.
내가 이걸 선호하지 않은 까닭은 질겨서 자르기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한개만 살경우 애들에게 분배하기가 무척 애매했다.
가격은 한장에 50원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크기는 대충 가로 20센치 세로 15센치 정도의 장방형이었다.

3. 구이포.
과거 이거랑 비슷한 제품으로 해태인가 롯데의 오징어포같은게 있었다.
다만 그건 잘게 썰어서 얇은 줄기로 되어 있지만 이 구이포는
통체로 그것도 한번 접혀서 약 30센티의 길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비닐봉지에 한개씩 담겨서 앞에 조악한 인쇄로 구이포와
물고기 그림이 하얀색으로 써있었고 이것 역시 그냥 먹기도 하고
구어서 먹기도 했는데 난 주로 그냥 먹는 쪽을 택하곤 했다.
이것역시 한봉지에 5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4.라면.
이건 그냥 라면이 아니다. 당시 해피라면 쇠고기라면 삼양라면 등 나타내는게
아니라 라면처럼 생긴 불량식품이다. 이것도 쫄쫄이라 부르기도 했었다.
하지만 얇은 면발로 말미암아 그냥 라면이라 많이 불렀다.
이건 위의 쫄쫄이와 같은 재질의 제품인데 다만 직경1미리정도의 얇은
철사처럼 생긴 쫄쫄이가 네줄로 약 20개정도가 붙어있었다.
그걸 그냥 먹으면 한줄씩 뜯어내서 먹곤 했는데 점차 줄어갈때마다
슬프기도 하고 한줄씩 짤라지는게 신기하기도 했었다.
역시 이것도 불이 구워 먹을수 있었는데 난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
이걸 불이 굽게 되면 주변의 몇줄의 바깥으로 벌어져 버리고 딱딱해서
한줄씩 잘라먹을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5. 설탕사탕.
이건 지금도 종로에서 파는걸 봤다.
그냥 설탕을 불에 녹여서 약간의 물을 썪은다음 틀에 부어 굳힌 사탕인데.
당시 제일큰게 잉어였고 군함이랑 칼. 비행기등등이 었었다.
깡통에 번호가 쓰여진 수많은 종이들이 접혀 들어가 있고
다이에는 번호가 쓰여진 판과 다섯칸정도를 가릴수 있는 작은 판이 세개있었다.
우선 번호가 쓰여진 다이에 작은 판세개를 적절히 배치해서
내가 뽑는 번호가 나올만한 곳을 가린다음.
깡통에서 번호표를 뽑는다. 그래서 그 번호위에 있는 작은판에
그려진 설탕사탕을 주는 것인데 한번에 50원이었다.
그걸로 가장큰걸 딴게 큰칼이었다.(작은 칼도 있었다.)
그 큰칼을 뽑기까지 얼마나 긴 고난의 날들이었던가….아아~~~.

6. 뽑기.
역시 추억의 먹거리중 머니머니 해도 기억에 남는건 이 뽑기다.
손잡이가 달린 작은 그릇에 설탕을 붓고 녹을때까지 잘저은다음
소다를 약간 섞으면 이쁘게 부불어 오르는데 이걸 젓던 나무막대로
떠서 먹는다. 이 소다를 섞는 타이밍과 그 양이 무척 중요한데.
너무 늦게 섞으면 설탕이 다 타버리고 너무 이르면
잘 부풀지를 않는다. 또한 너무 많이 썪으면 안이 떵비고 금방
딱딱해지고 너무 적으면 역시 부풀지를 않는다. 고수가 되기 위해
허비했던 시간들………오호…라..
아까워서 천천히 먹으면 금세 딱딱해지고 그걸 불에
살짝 뎁히면 주변이 녹는데 그걸 나무막대로 싹 들어올리면 신기하게도
사탕처럼 나무막대에 달라붙어 떨어졌다. 그걸 한입에 넣고
물이 담겨있는 나무막대 통에 다시 넣고….
파라솔 하나에 포장이 쳐진 그 작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이들..
항상 만원이던 그곳…
이것 말고도 부풀어오른 뽑기를 철판에 딱 쳐서 떨어뜨린 다음
판으로 눌러서 납짝하게 만들어서 모자나 별등등 기타 모양을 찍어
그걸 먹기도 했는데 둘다 50원이었다.
이걸 잘떼서 모자모양대로 잘라지면 한개가 보너스…
대신 침을 발라서 떼내면 무효가 된다. 그래서 그거 한개 더먹겠다고
너도나도 가장 쉬운 모자를 먹었기 때문에 항상 모자가 가장 인기상품이었다.
가끔씩 한시간도 넘게 앉아서 200원이 넘게 사먹으면
아저씨가 서비스로 뽑기하나를 그냥 주거나 작은 사탕처럼 두개에서
세개 만들어서 애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 아…뛰어난 상술…

7. 달고나.
이 작은 가계에선 뽑기만 파는 것이 아니라 달고나 라는 하얀 장방형의
이상한 물질도 팔았는데 아마도 엿의 일종으로 생각된다.
이 달고나를 예의 그릇에 넣고 불에 달구면 천천히 녹아서
약간 노란빛의 끈적한 액체로 바뀌는데 이걸 떠먹기도 했다.
다만 이건 소다를 넣어서 부풀릴수 없었기 때문에
인기가 별로 였다. 이때부터 이미 양만은게 장땡이라는걸 깨달았다.
영악한 지고…..

PS. 나는 이때 유행하던 한가지 놀이가 생각난다.
전투카드놀이.
이 전투카드놀이가 성공을 하고 나서 유사 제품이 십여가지가 넘게
나왔지만 역시 가짜는 진짜만 못한법. 전투가 그중에 가장 장수한
카드놀이였다. 이 전투카드는 빨간 카드와 파란카드 두가지로 나눠져 있는데
각각 원수(별 5개) 대장, 중장, 소장, 준장(준장은 두장), 대령, 중령, 소령
대위, 중위, 소위, 상사, 중사, 하사, 병장, 상병, 일병, 이병.
그리고 폭탄(두장), 그리고 별동대(두장), 국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별동대는 빨간카드의 경우는 독수리오형제였는데 파란카드는 잘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투 놀이 방법은 다음과 같다.
두명이 각각의 카드를 가진다.
서로 한짱씩 카드를 뒤집어 꺼내 놓는다.
그리고 동시에 뒤집는다.
뒤집힌 카드중 높은 카드를 가진 쪽이 이긴다.
진카드는 이긴 카드를 내놓은 쪽에서 포로로 가져간다.
궁극적으로 상대방의 국기를 빼앗는 쪽이 이긴다.
다만 약간의 예외가 있는데 국기와 별동대는 별에게는 이기고 나머지에겐 진다.
그리고 폭탄은 별에게는 지고 나머지에겐 이긴다.
이 카드놀이는 상대방의 전략전술을 파악하고 심리상태를 분석해서
카드를 내야 하기때문에 상당한 전술전략적인 노하우가 필요했다.
게다가 상대방의 별을 다 먹었다고 무턱대고 별을 내다가
국기가 나와서 아까운 원수와 대장을 날리기도 했었다.
아. 그리고 똑같은 카드가 나왔을경우는 그 카드는 그대로 놓고
다시 한장씩 내서 그 승부에 이긴쪽이 두개의 포로를 잡을수 있었다.
똑같이 대장을 내서 무승부되고 여유있게 원수를 내놨는데
상대는 별동대….원수와 대장이 동시에….T.T

혹시 기억하시는지???

bada

1 thought on “추억의 먹거리”

  1. 전투 카드놀이 기억나요.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려고 인사동 가서 전투카드놀이 구하려 했는데, 없네요.
    그래서 혹시나 인터넷 검색하다 이 글을 보게 되었네요. 함께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립네요.
    전투카드놀이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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