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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개고기 논쟁에서 반대론자들의 핵심은.
혐오식품이라는 것. 그리고 혐오식품인 이유는 개들은 우리의 졸라 친한 친구(ㅡ,ㅡ;;;)이기 때문이다.
아아..그리고 가끔 야만적이고 후진적인 악습이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누가 봐도 말도 안되는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논리의 논자도 찾아볼 수 없는 초딩들 막무가내 고집부리기와 다르지가 않다.

첫째. 개고기는 혐오식품인데 닭고기나 쇠고기. 돼지고기는 왜 혐오식품이 아닌가?
둘째. 너는 개랑 친하지만 난 닭이랑 더 친하면? (초딩도 안되는 논리이기에 대응 논리도 유치해진다)
셋째. 야만적이고 후진적인 악습이라고 누가 정했나?

보통 대충 이런 논리로 반박을 한다.

그런데 문득.

우리 사무실에는 내가 이름을 모르는 풀이 있는 화분이 있다.
이게 꽃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있다.

한참 물을 안줘서 거의 시들어버린 녀석을 보고…
사무실 사람들이 물을 주기 시작했더니. 몇일사이에 눈에 띄게 생생해졌다.
그리고 오늘.
우리 사무실에는 해가 잘 들지 않아서
사무실 사람 한명이 해가 좀 잘드는 발코니에 화분을 놔뒀는데.
추워서 인지 거의 반쯤 동사 지경에 빠졌다.
그걸 본 나는 그 화분을 안으로 들여 놨는데.
그리고 사무실 사람들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광합성을 못해서 굶어죽는 것과 추워서 얼어죽는 것중에 어느쪽이 나을까요?”
라고 말이다. 다들 픽 웃었다.

이런 걸 측은지심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류의 측은지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식물도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돌아가서.
그들(반대론자)들이 개와 강아지를 “우리의 친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그 개와 강아지가 이쁘기 때문이다.
실예로 그런 반대론자들의 이야기중에는 “이렇게 귀엽고 이쁜 강아지를 어떻게 먹을 수 있냐?”는 식의
참 강아지가 두다리 들고 물구나무서서 용변보는 것만큼 쌩뚱맞은 주장이 있기 마련이다.

만약 개가 악어나 뱀. 왕도마뱀. 바퀴벌레처럼 생겼다면 과연 그래도 이렇게 귀엽고 이쁜 강아지를 먹을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겠는가?

느낌이 오나?
그들은 자신의 미의식으로서 가치있는 생명과 가치없는 생명을 나누고 있다.
이건 먹기 위해 개를 죽이는 행위보다 더 잔인하고 자신들의 논리를 역행하는
한마디로 니미개소리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즉. 자신이 보기에 이쁘고 아름다운 생명은 소중하고 자신이 보기에 추하고 더러운 생명은 무가치하다.
처음부터 그들은 생명과는 관계없이 단지 이쁘고 귀엽고 아름다운 장난감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이다.
그런 주제들은 생명을 언급할 자격도 없을 뿐아니라 위선의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예전에 TV에 무슨 한민족리포트인가 나발인가 하는 프로에서
한 미국에사는 동물관련 무슨 운동가 여자를 방송했다.
단체가 대충 식용동물을 먹지 말자는 운동을 하는 단체다.
그러한 근거로 큰 양계업체 양계장을 급습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 닭들이 학대받고 있는지 찾아내 공개했다.
뭐 그들의 농장에는 닭외에도 식용으로 쓰이는 소나 돼지등도 구해다 놓았다.

난 의문이 생겼다.
그냥 하나의 화분일 뿐이지만.
목말라 시들어 물을 주면 다시 생기가 돌고 해를 못봐 광합성을 못해 굶으면 까칠해지며
추우면 얼어죽어 가는 그 하나의 화분의 풀도 (아마 꽃일게다 언제피는지 모르지만)
하나의 생명이며 그 생명의 현상을 눈으로 보여주는데.
얼어죽어가는 화분에선 마치 고통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채식은 괜찮고 육식은 안된다니. 뭔가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과육이나 열매를 제공하는 일부의 채소나 과일들은 그들 스스로 제공하는 것이라 하겠지만.
대부분 채식의 식물들은 그들의 몸과 핏줄을 칼로 자르고 도려내어 먹는다.
가지. 잎. 꽃. 뿌리. 먹지 않는 부위가 없다.
콩나물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린 싹들이다.
먹는 것도 모잘라 우려내 차로도 마신다.
하지만 아무런 가책이 없다. 그저 당연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어차피 인간은 생명을 해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환경보호나 동물 보호등에 마음이 가면서도 계속 따져 들어가면 뭔가 이상한 이유도 이것이다.
인간은 다른 생명을 해치고 빼앗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즉. 생명을 빼앗고 해쳐야 살아가는 존재가 생명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아이러니.

여기까진 좋다.
그것이 측은지심이라 생각하면 되니까.
최소한도로 해치고 사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위안받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거기에 더해.
내가 이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지키고 혐오하는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

니가 개를 니 가족으로 생각하고 사랑하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은 니 자유고 내가 알바 아니지만.
남이 개를 먹든 말든 그런 걸 딴지 걸지 말란 말이다.

이 위선자야.

bada

3 thoughts on “개고기”

  1.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를 먹어야 (그 생명체가 살아있던 죽어서 영양분 상태로 분해가 되었던…)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주장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2. 개는 축산법상 이미 가축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축산물위생관리법에 빠져 관리를 못하는 상황입니다. 축산물위생관리법에 추가하면 바로 사육환경, 도축환경, 유통, 보관등 현재 개고기 유통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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