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생각
빨간 머리 앤을 보고…
오래전 어릴때 봤던 앤의 행동과 생각에 대한 내가 동감했던 것이
시간이 지난뒤 앤은 정말 이상한 아이 였다는 것을 보면서
내가 자랐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었다.
오늘 아이들을 위한 사랑의 기술이라는 TV 프로를 보니
인간의 뇌는 태어나서 20살이 되도록 계속 자라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10대이하의 아이와 성인은 같은 것을 보아도 그것을 느끼고 생각하는 뇌의 부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뇌의 부위가 달라서 생각이 다르다.
단순히 다르다기 보다 생각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왠지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다.
생각하는 방법이 다른 것이 세대차이를 만들고 서로간의 교류의 벽을 쌓는 것이다.
아니 단순히 생각하는 방법이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 그와 나의 생각이 서로 다르다는 것.
그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생각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그 다른 생각을 이해하진 못해도 존중할 수 있다면.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생각하는 법이 다르다해도 벽이 생기진 않을 것이다.
다양성의 문제인 셈이다.
민주주의가 왜 다른 체제보다 우월하고
민주국가에 태어난 것이 왜 행복인지.
독재정치가 왜 나쁜 것인지.
잘 먹고 잘 살게 해주었어도 독재가 왜 나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사람을 의미하는 인간(人間)은 누구나 알듯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의미하는 것처럼.
관계의 교류가 바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생각하는 법이 다르고
가치관과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존중하는 것이
그러한 교류의 시작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왜 독재가 경제적인 발전에 근거하더라도 옳지 않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연히 우리나라의 독재정치가 경제발전과 맞물려 있을 뿐이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군사독재정부가 이룬 것이 아니라 국민의 피땀이 이룬 것이다.
민주주의의 위대한 점은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인 나에게 미국은 가증스러운 제국주의국가에 불과하지만.
미국인에게 미국이 위대한 조국일 수 있는 것은
바로 미국이 민주주의국가이기 때문이다.
……. 그럼. 합리주의를 근간으로 삼는 미국의 민주주의만 다양성을 인정할까?
우리의 전통윤리는 그러한 합리주의에 비해 비민주적일까?
그렇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논어에 보면 이런 문구가 있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군자는 동하지 않고 화하고 소인은 화하지 못하고 동한다는 것인데.
군자는 남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소인은 그렇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유학이 우리의 전통윤리에 근간이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바이다.
우리의 전통윤리는 조화를 중시하고 중용을 제안한다.
조화는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중용은 합리와 명분의 조화를 의미한다.
왜놈들과 미제놈들 때문에….
힘이 없어서, 배가 고파서 그 놈들에게 구걸하는 동안
우리의 전통윤리는 더럽혀지고 망가져버렸다.
공자가 죽어야 한국이 산다던가?
우습다. ‘조까’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나라의 유학은 중국의 그것과 다르다.
우리의 전통윤리는 유학을 근간으로 삼지만
거기에 우리의 정서와 갖은 학문과 종교적 윤리가 믹스되어
우리나라만의 전통윤리가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문제들에서.
우리는 잊었지만. 전통윤리의 것들을 찾아보면.
거의 모든 해답이 제시되어 있다는 사실은 꽤나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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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의 문제에서 꽤나 또 발전을 했군.
당신은 화이부동할 수 있는가?
bada